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폰 뎀 바흐-첼레프스키 (문단 편집) === 초기 이력 ~ [[제1차 세계 대전]] === 1899년 3월 1일, [[독일 제국]] [[포메른]]주 라우엔부르크(Lauenburg)[* 현 폴란드 포모제주 렝보르크군 렝보르크(Lębork). 현재 독일 땅인 [[슐레스비히-홀슈타인]]주 라우엔부르크(Lauenburg an der Elbe)와의 구별을 위해 Lauenburg i. Pommern이라고 한다.]에서 몰락한 토착 지주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. 모친인 엘주비에타 에벨리나 시만스카(Elżbieta Ewelina Szymańska)는 [[토룬]](Toruń) 출신의 [[폴란드인]]이었고, 부친 오톤 얀 폰 첼레프스키(Otton Jan von Zelewski)는 그가 아직 어렸을 때 요절했다. 그의 성씨인 '첼레프스키'는 폴란드 내 소수민족인 [[카슈브인]]의 성씨 '[[https://pl.wikipedia.org/wiki/Żelewski|젤레프스키]](Żelewski)'가 어원이다. 독일 제국의 전신 중 하나인 [[프로이센 공국]]은 [[튜튼 기사단]]이 동유럽으로 진출하면서 [[폴란드인]]을 포함한 [[슬라브족]]을 정복-동화시켜 만든 나라였으므로 독일인 중에서도 슬라브계 -[[스키(인명)|스키]] 성을 가진 가문들이 상당히 많으며, 이런 사람들은 조상들이 대체로 슬라브계 또는 폴란드계로 봐도 무리가 없다. 훗날 [[바르샤바 봉기]]와 같이 동족을 잔혹하게 밟아 죽이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꽤나 놀랍지만, 이미 무장친위대에 들어가 장군까지 되는 사람에게 그런 것이 중요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[* 비슷하게도 [[프랑스]]에서 잔혹한 학살을 저지른 [[클라우스 바르비]]는 프랑스계였다. 이와 반대로, [[폴란드 제1군]]을 이끌며 폰 뎀 바흐에 맞서 싸웠던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Zygmunt_Berling|지그문트 헨리크 베를링(Zygmunt Henryk Berling)]] 중장은 독일계였다.]. 본명은 부친의 성씨를 따른 '폰 첼레프스키(von Zelewski)'였으나, [[1925년]]부터 '개울가에서'라는 의미의 [[독일어]] '폰 뎀 [[바흐]](von dem Bach)'라는 접두어를 붙였고, [[1940년]]부터는 아예 '폰 뎀 바흐(von dem Bach)'라는 성씨로 갈음하였다. 귀족 가문 태생이었으나 바흐첼레프스키의 유년 시절은 그렇게 유복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. [[제1차 세계 대전]]이 발발했을 때인 [[1914년]] 11월에 [[독일 제국군]]에 최연소 훈련병인 15세로 입대하여 복무하였다. 이 기록은 [[1938년|24년 뒤에]] 자신보다 한참 하급자였던(단 직속 부하는 아니였다.) [[헤르베르트 브루네거]]가 이어가게 된다. 참고로 브루네거는 바흐처럼 무장친위대에 입대하나 고위 장군까지 올라간 그와는 다르게 친위대 중사에서 진급이 끝났다. 독일 제국군 복무 당시 큰부상을 2번 입었는데 한번은 독가스 흡입으로 인해 내장 질환을 앓게 된 계기가 되었다. 그럼에도 전공을 세워 [[철십자 훈장]]을 수여받았고 전쟁이 끝날 때쯤에는 [[중위]]가 되어 있었는데 이때 나이가 고작 19세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